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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2022 기상청 지진정보통합공모전 스토리 최우수 - 지진 가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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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

지진 가족

 

모두 수고가 많았습니다. 그런데 지진에 관한 내용은 없네요?”

 

나는 20127월 어느 지자체의 재난안전국장으로 부임했다. 그리고 며칠 후 소속 과장들로부터 재난에 관한 특별 현안 업무를 보고 받았다. 그런데 평소 내 특별한 관심 분야인 지진에 관한 구체적인 언급들이 없었다. 치수과장의 풍수해 종합대책에 지진이라는 몇몇 활자만 외롭게 껴묻어있을 뿐이었다. 내 뜬금없는 채근에 과장들은 망을 보듯 조심스레 서로만 쳐다보았다. 창밖, 갓 피어난 어린 능소화도 까치발로 빼꼼 내다보았다.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사람들은 대체로 우리나라는 지진 안전지대라는 생각이 강하다. 그 무렵에는 2004520일 규모 5.2의 울진 앞바다 지진 외에는 크게 유의할 만한 지진도 없었다. 더구나 그 지진도 진앙지가 육지와 멀리 떨어져 있어 사회적 이야깃거리가 되지 못했다.

 

절대적 강도를 소수점까지 표시하는 리히터 규모와 지역에 따라 상대적으로 서로 다른 지진의 느낌을 정수로만 쓰는 수정 메르칼리 진도는 다릅니다. 또한 규모피해의 정도는 꼭 비례하는 것만은 아니죠. 따라서 그 단점 보완을 위해 진도라는 개념이 정립되었어요.”

 

내가 한 마디 더 보태자 과장들의 표정은 이제 어리둥절해졌다. 나는 내심 웃음이 났다. 사실 나도 과거에는 지진에 대한 지식은커녕 관심조차 없었다. 당시 내가 아는 것이라곤 지진이 발생하면 책상 밑으로 들어가 머리를 보호하라는 내용뿐이었다. 그것도 우연히 지진의 공포를 전하는 방송에서 건성으로 들은 내용이었다. 더구나 그런 큰 지진은 내 생애 단 한 번도 경험할 것 같지 않았다. 지진에 대한 내 주변 사람들의 인식도 비슷할 터였다.

 

그 후 나는 주무 과에 지진 관련 업무를 분장시켰다. 그리고 직원들에게 그간 내가 공부한 지진 조기경보, 지진 재난문자의 적시성 등을 토대로 직접 강의안을 제작하여 교육했다. 특별히 그 내용은 기상청이나 지진 관련 개인 유튜브 채널을 많이 참조했다. 그 강의는 직원용 교육이었지만 지진에 대한 우리 관내 주민들의 인식을 변화시킬 내 구상의 첫 출발선이었다.

사실 내가 지진에 마음을 엎지른 것은 2001년부터였다. 당시 나는 서울시 소속 종합대학교에서 국제교류팀장으로 일했다. 그런데 우연히 일본 유학생들로부터 지진에 관한 여러 충격적인 경험과 피해를 심도 있게 전해 들었다. 그 후 나는 지진에 관한 자료를 깊이 탐색하기 시작했다.

미국의 철학자 나오미 잭(Naomi Zack)’은 그녀의 저서 Ethics for Disaster(2009)에서 재난의 문제를 윤리적 측면에서 소개했다. 재난 방재에서 자주 불평등하게 처우를 받는 사회적 약자들에 대한 정부의 윤리적 의무를 강조한 것이다. 그 것은 내 마음 속 우선순위와 일치했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계층과 상황별 지진 안전교육을 계획했다. 그리고 관내 소방서와 연계한 주민 단체교육을 추진했다. 우선 사회적 약자인 생활 수급자분들과 노인정, 그리고 어린이집부터 시작했다. 특별히 각 하부기관 행정종합평가에서 주민 교육 참여율이 높으면 가중 점수를 주겠다는 예고도 했다. 그 후 차츰 일반 주민으로 그 대상을 넓혀갔다. 그 결과 예상 외로 수많은 주민들이 지진은 물론 인공호흡 등 다른 안전 교육까지 덤으로 받게 되었다. 어쩌면 우리나라는 지진의 염려 없는 축복 받은 땅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2000년대 들어 큰 규모의 지진들이 산발적으로 발생하고 있다. 더구나 지진은 사전에 정확하게 예측하는 것이 불가능하다. 아무리 최신 과학으로 지진의 시기를 잘 분석해도 나중에 그 예측이 틀린 경우도 허다하다.

 

나는 집에서도 가족들에게 수없이 지진의 위험과 대처법을 설명했다. 그래서인지 지인들은 우리를 지진가족이라 부른다. 우리 집의 화분은 바닥에 놓여있고 그릇장은 매번 사용 후 문고리끼리 서로 고정한다. 지진이 나면 피할 곳도 집 앞 큰 어린이 놀이터로 정해두었다. 처음에는 심드렁하던 가족들도 점차 지진의 위험을 인지하기 시작했다. 그래서인지 지금은 결혼한 두 자녀들도 나처럼 주변에서 지진 대비 홍보 전도사대접을 받는다고 한다.

 

그러나 내가 6년 전 은퇴할 때까지도 큰 지진은 일어나지 않았다. 그래서인지 가끔 당시 교육을 받았던 분들로부터 훈련 받은 것을 활용할 기회를 기다린다는 우스갯소리도 들었다. 그 후 나는 회갑의 나이까지 박사를 거쳐 지금은 사이버대학 교수와 사회인 대상 전문 강사로 활동한다. 그리고 강연 때마다 강의 내용과 관계없는 지진 이야기를 꼭 곁들인다. 지구는 우리 모두의 소중한 집이기 때문이다. 물론 매번 다들 크게 놀라는 눈치다.

그러던 201711151430분에 나는 규모 5.4의 긴급 재난문자(당시는 5.5로 공지)를 받았다. 당일 142931초에 포항에서 발생한 지진에 대한 정보였다. 오래도록 나름대로 지진을 연구했던 나는 그 규모로 보아 곧 뒤따를 큰 소란이 그려졌다. 그리고 잠시 후였다. 마침 우연히 포항에 사는 친구와 통화를 하던 아내가 갑자기 공포에 질려 소리를 질렀다.

 

돌아보면 당시 기상청에서는 실질적인 피해를 주는 S파가 도착하기 전에 재난 문자를 보낸 것이었다. 이는 1년 전 경주 지진에 비해 무려 7초나 단축된 획기적인 통보였다. 나는 앞뒤 가리지 않고 아내의 전화기를 빼앗았다. 그런데 전화기너머 그분은 막 19층에서 엘리베이터를 탔다고 했다.

 

지금 바로 아래 두세 개 층의 버튼을 누르세요. 그리고 가장 빨리 열리는 문에서 나와 계단으로 뛰어 내려가셔서 넓은 공터로 멀리 피하세요!”

 

나는 다급한 나머지 거의 명령조로 소리쳤다. 사실 그분이 계속 내 전화를 받고 있는지도 확실치 않았다. 잠시 후 TV에서는 포항 지진을 긴급 속보로 타전하기 시작했다. 1년 전 경주 지진과 비견되는 대형 지진으로 진원지가 얕아 큰 피해가 염려된다고 했다. 아내는 내 곁에서 덜덜 떨고 있었다. 다행히 한참 후 그분이 전화하여 특별히 내게 고맙다는 말을 전했다.

요즘은 우리나라의 지진 재난 문자 시스템도 크게 발달했다. 2021728일부터 규모 5.0 이상이면 지진 발생과 조기 경보 사이를 5~10초로 줄였다고 한다. 단 몇 초지만 인명과 재산의 피해는 결정적인 차이가 난다. 물론 앞으로도 더욱 그 시간을 줄여 국민들이 지진에 대응할 시간을 최대한 확보하도록 했으면 좋겠다. 또한 요즘은 기상청 지진 발표에서 KBS 자막 송출 간격이 5초 정도라고 한다. 앞으로는 조금이라도 더 짧아질 것 같다. 덩달아 우리 국민 모두는 심각한 기후변화에 관한 관심도 키워야 할 때다.

 

작년 78일과 17KBS 2에서는 환경 스페셜 지구의 경고 - 100인의 리딩쇼를 연속으로 방영했다. 우리 가족은 지진 가족답게 모두 그날 다른 약속을 잡지 않고 함께 TV를 시청했다. 시인 김용택, 건축가 승효상 등이 지진등 재난의 거대한 공포를 알리고 있었다. 방송 내내 출연자의 면면처럼 문화와 과학이 창의적으로 어우러지고 있었다. 나는 조금은 공포를 느꼈지만 다시 한 번 대응만 잘 하면 지진은 극복할 수 있다는 확신이 섰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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