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상작 전시
구분 | 스토리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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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2022 기상청 지진정보통합공모전 스토리 우수 - 작은 관심, 소중한 생명 | |
조회수 | 256 | |
내용 |
작은 관심, 소중한 생명
점심시간이 지나고 하루 중 사무실이 가장 조용한 오후 2시경. 10여 명의 직원이 있는 사무실이라고는 믿겨지지 않을 정도로 고요하다. 햇살도 소리 없이 내려앉는 이곳에 들려오는 것은 간간이 키보드 두드리는 소리와 마우스 클릭하는 소리뿐이다. 나 또한 달콤한 식곤증에 젖어 반쯤 멍한 상태로 커피를 홀짝이며 모니터 화면을 응시하고 있었다. 그렇게 여느 날과 다를 것 없는 평범한 오후가 지나가고 있었다. 그리고 그 때, 고요한 정적을 깨트리는 날카로운 경고음들. 사무실 안 모든 핸드폰에서 일제히 경고음이 들려왔다. 그렇게 여느 날과 전혀 다른 오후가 시작됐다. 요란하게 울려대는 소리에 다들 어리둥절해 하며 핸드폰을 확인했다.
회사에서 멀지 않은 곳에서 상당한 규모의 지진이 발생했다는 지진재난문자였다. 사무실 사람들은 하나 둘씩 자리에서 일어나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지진?” / “지진이라고?” / “지진!!” “네, 지진이래요!” “어? 근데 여기서 멀지 않은데요?!” “혹시 진짜 지진이 나면 다들 책상 아래로 대피해요.” “설마...” 그 순간 바닥이 쿨렁했다. 휘청. 일어서 있던 직원들이 순간 휘청거리며 책상을 짚었다. 불안한 시선들이 서로 닿는 순간 땅이 다시 한 번 크게 쿨렁이며 바닥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뒤이어 공포에 질린 비명소리가 사무실을 가득 채웠다. 지진이었다. 나는 지진을 이렇게 정확하게 인지한 것이 생전 처음이었다. 또한 지진을 이렇게 온몸으로 실감한 것도... 살아생전 처음이었다. 언제나 단단하게 고정되어 움직일 거라곤 한 번도 생각해 본 적 없던 사무실 바닥이 파도치듯 흔들렸다. 늘 제자리를 지키던 사무용품들이 누군가 임의로 흔드는 것처럼 불안하게 흔들리다 하나 둘씩 떨어졌다. 익숙하기만 한 나의 공간, 우리 사무실이 순식간에 낯선 재난 현장으로 변했다. 그리고 나는 그 생경한 광경에 그만 온몸이 굳어 버렸다. “다들 책상 밑으로 들어가요! 빨리!” 사람들 비명 사이로 김과장이 크게 외쳤다. 그 소리에 온몸을 감싼 얼음이 깨진 것처럼 그때서야 겨우 몸을 움직일 수 있었다. 더듬더듬 의자를 치우고 책상 아래로 기어들어가 몸을 잔뜩 웅크렸다. 벌벌 떨리는 손으로 책상 다리를 붙잡고 있는데 반대편 자리에 이대리가 보였다. 다리가 불편한 그는 휠체어에 앉아 근무하는데 이리저리 흔들리는 휠체어를 고정시키려고 애쓰고 있었다. 그를 도울 요량으로 풀려버린 다리를 재촉할 때, 내 옆자리 김과장이 순식간에 책상 밑에서 뛰어나와 휠체어를 통로 쪽 넓은 공간으로 옮겼다. 그리고 이대리를 도와 휠체어 바퀴를 고정시키고 근처 의자에 놓여 있던 방석을 집어 들었다. 그러곤 방석으로 이대리의 머리와 목을 감싸게 하고 큰 소리로 몸을 웅크리라고 소리쳤다. 평소 조용하기만 한 김과장이 다르게 보였다. 직원들 모두 김과장이 비틀거리며 자신의 책상 밑으로 다시 들어가는 모습을 마음을 졸이며 바라보았다. 책상 아래에서 본 사무실은 아수라장이었다. 바닥에는 온갖 물건들이 떨어져 있었고, 통제력을 잃은 의자들은 이리저리 미끄러지고 있었다. 머리 위 책상은 온갖 물간들이 부딪치고, 엎어지는 소리로 요란했다. 텀블러가 엎어졌는지 아까 마시던 커피가 쇠창살처럼 뚝뚝 떨어지고 있었다. 나는 불안과 공포에 떨며 이 시간이 빨리 끝나길 간절히 빌었다. 얼마나 지났을까. 가늠할 수 없는 시간 속에 영원할 거 같던 진동이 시작할 때와 마찬가지로 갑자기 멈췄다. 끝난건가? 아직인가? 어느 누구도 섣불리 움직이지 못했다. 모두 숨 죽이고 있을 때 이대리가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저... 혹시 모르니 출입문을 열어 둘까요?” “... 출입문이요?!” “네. 전에 지진 대처 요령 방송을 본 적 있는데 지진이 나면 문이 뒤틀려서 안 열릴 수 있으니 출구를 확보해야 한다고 하더라고요.” “맞아요, 낙하물 때문에 문이 막힐 수도 있다고 들었어요! 제가 열게요!!!” 출입문에서 가장 가까이 있던 최사원이 맞장구치며 움직였다. 다른 직원들도 천천히 책상 아래에서 나와 서로의 상태를 확인했다. 다들 놀란 기색이 역력했지만 다행히 다친 사람은 없어보였다. “어떡하죠? 이대로 있어야 할까요? 아님 밖으로 대피해야 할까요? “밖으로 나가다가 또 지진이 시작되면 어떻게 하게?” “그래도 한 없이 여기 있는 것 보단...” “오히려 밖이 더 위험한 거 아냐? 낙하물도 그렇고” “나가도 어디로 가죠?!” 지진이 계속 될지 알 수 없는 상황에서 의견이 분분했다. “회사 옆에 ○○공원으로 가시죠!” 김과장이 말했다. “공원 입구에 ‘지진 옥외대피장소’라는 표지판을 본 적 있습니다.” “지진 옥외대피장소요?” “네! 지진 발생 시 긴급 대피할 수 있는 장소라는 의미예요.” 결국 지진이 잠잠해진 틈을 타서 대피장소로 이동하자고 결정됐다. 김과장이 큰 목소리로 말씀하셨다. “화재가 날 수 있으니 자신의 자리에 전원스위치는 모두 끄고, 각자 머리를 보호할 수 있는 방석이나 가방을 챙기도록 합시다. 엘리베이터는 위험하니 모두 계단으로! 창문에서 최대한 떨어져서 이동하고, 여진이 오면 반드시 머리를 보호 하세요!” 김과장의 지시에 맞춰 하나 둘 계단으로 향했다. 나와 최사원은 이대리를 부축해서 사무실을 빠져나왔다. 마지막으로 김과장이 사무실 전등을 소등하고 나오는 것을 보았다. 3층 계단을 내려오는데 간간이 여진이 느껴졌지만 아까처럼 심하게 흔들리지는 않았다. 떨리는 마음으로 간신히 건물을 빠져 나왔다. 모두 무사히 공원에 도착해서 각자 가족들에게 연락했다. 나도 떨리는 손으로 가족들에게 전화를 했다. 어머니는 아파트 경로당에 계시다가 관리사무소 직원의 대피 유도에 따라 친구분들과 다 같이 대피하셨다고 한다. 아내는 자동차로 딸아이를 하교시키고 있었는데 지진재난문자를 받고 곧바로 도로 오른쪽에 주차하고 차 문을 잠그지 않고 넓은 공터로 대피했다고 한다. 모두들 무사하다는 소식에 긴장이 탁하고 풀렸다. 저쪽 벤치에 김과장이 앉아 있는 게 보였다. “아까 이대리 휠체어는 왜 옮긴 거예요?” 내가 다가가 앉으며 물었다. “아... 혹시 책상에서 떨어지는 물건에 이대리가 다칠 수도 있고, 고정시켜도 지진이 심하면 흔들리다가 책상 등에 부딪혀 다칠 수도 있어서 최대한 넓은 공간으로 옮긴 거예요.” “김과장님은 어떻게 그런 것을 다 알고 있으세요? 대피요령도 그렇고 공원이 대피장소라는 것도... 나도 점심 먹고 항상 이 공원에서 산책하는데 한 번도 표지판을 못 본 거 같은데...” 김과장은 겸연쩍어 하면서 대답했다. “사실 저도 잘 몰랐는데 얼마 전에 아내와 만약 자연재해가 발생하면 어떻게 해야 할까 얘기한 적 있어요. 그러면서 인터넷에서 지진대피요령이나 행동요령 등을 찾아 봤거든요.” “그랬군요. 대단하네요.” “아, 아닙니다. 저도 당황했는데... 그래도 지진재난문자 덕분에 미리 알아서 그나마 대응할 수 있었던 거 같아요. 뭐 이런 것들이 그리 대단한 건 아니 었지만.” “대단한 거죠!! 재난문자랑 김과장님 덕분에 직원들 모두 다치지 않고 무사 하잖아요. 사실 난 아까 머릿속이 하얗게 돼서 아무 생각이 안 들더라고요.” “네. 확실히 미리 대비하고, 평소에 관심을 갖는 게 중요한 거 같더라고요. 저도 지진에 관심을 가지니까 그제야 저 표지판이 눈에 들어오더라고요.” 김과장이 눈길을 따라가 보니 공원 초입에 커다랗고 노란 표지판이 있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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